Page 103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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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거조사 영산전.
經』을 중심으로 교학을 완성시키고 『중론中論』을 지은 용수龍樹(Nagarjuna,
150?~250?) 보살을 종조宗祖로 삼아 개창한 것인데, 일본에는 사이초最徵
(767~822) 대사가 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와 백제의 여러 승려들이
중국으로 가서 천태종을 공부하고 들어왔다.
고려시대 때에는 의통義通(927~988) 대사가 중국 천태산 운거사雲居寺로
가 공부를 하고 중국 천태종의 16조가 되어 고려 승려 제관諦觀(?~970) 대
사와 함께 천태종을 중흥시켰고,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1055`1101) 화상
은 중국으로 건너가 의통대사에게서 법을 전수받고 1086년에 귀국하여
1097년(숙종 2)에 개성에 신축한 국청사國淸寺의 주지가 되면서 천태종을 개
창하였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대각국사가 1085년 송나라 수도 변경汴京으로 가서
계성사啓聖寺 등에서 일년 동안 머물고 있었을 때는 소동파 선생이 활동하
고 있을 때인데, 서로 만나지는 못하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동파 선
생은 고려 사람들이 송나라로 와서 자꾸만 자료를 달라고 하는 일 등에 대
해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당나라 말기에 많은 중국 전적들
이 해외로 나가고 정작 중국 본토에는 남아 있는 자료들이 적었기에 그 폐
단을 알고 그러한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철학에서 말하는 아라한의 존재를 떠올려보면 아라한을 이러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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