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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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때에는 500나한으로까지 나아갔고, 나한들을 봉안하는 건물을 따로
짓기도 하였다. 나한에 대한 그림과 조각상을 그리고 만들어 봉안하는 일
은 오대五代(907~979)시대에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불교가 철학이 아니라 신앙이 되는 종교가 되려면 ‘구원’(=구제, 사죄赦罪)
과 ‘영생’(=부활, 극락왕생)이라는 요소가 있어야 하기에 나한신앙도 붓다의
가르침과는 달리 후세 인간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리라. 구원과 영생은 수
천년 전 이집트, 그리스의 고대 종교에도 있었는데, 동서를 막론하고 종교적
신앙에서는 그 출발점에서 생성된 관념이기에 수행자들이 기복신앙의 폐단
을 아무리 강조해도 대중들은 이를 쉽사리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불교의 진면목은 아니지만 대중들이 그러하니 ‘방편’이라고 하며
타협을 하게 된다. 불교가 기복祈福종교가 아니고 기독교가 기복신앙이 아
니라고 수행자나 종교이론가들이 아무리 강조를 해도 이에 귀 기울이는 대
중은 흔하지 않다. 구원과 영생이라는 것이 인간 욕망의 저변에 흐르는 가
장 강렬한 원망願望인데 이를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선종에서는 이
러한 것도 망상이니 모두 버리라고 하지만 말이다. 그 많은 나한상과 나한
도를 봉헌한 사람들이 모두 복을 받았다는 기록은 잘 보이지 않는다. 붓다
는 말했다. 무명에서 깨어나 지혜를 닦아 사성제四聖諦를 증득하고, 그를
이해했으면 이해한 너 자신을 등불로 삼아 굳건히 믿고 실천하라. 그러면
고苦는 없어지고 즐겁게 살게 된다. 간단한 가르침인데 욕망이 부글거리는
인간이 이것이 잘 안 되니 나한들만 붙들고 매달린다. 나무석가모니불∼
요즘은 500나한상이 그 표정이 각각 다르고 코믹하고 깜찍스럽다고 하
면서 미술의 인물조각으로 전시도 하고 관람도 한다. 재미있는 모습이다.
아무튼 나는 영산전을 나오며 500아라한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기를 중생의 마음으로 기원해 보았다. 그 소원에 아라한과阿羅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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