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1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P. 101
해원涵月海源(1691~1770) 대사가 주석하고 있던 안변安邊 석왕사釋王寺에 내
려온 의식집을 구하여 이를 기초로 『오백성중청문』을 편찬하게 된다. 석
왕사는 조선왕조가 출범하기 전에 새 왕조의 탄생을 발원하면서 무학無學
(1327~1405) 대사의 주도로 500나한상을 조성하고 500나한재를 지냈던 사
찰인데, 그곳에 나한재를 지내는 절차를 적어놓은 의례집이 내려오고 있
었다.
『오백성중청문』에 의하면, 이곳 영산전에는 나한상만 봉안되어 있는 것
이 아니라, 중앙에 석가삼존상을 놓고 좌우로 10대 제자, 16나한상, 500나
한상 등 모두 526구의 나한상을 봉안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의 나한
상은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데, 이러한 나한상은 의상義湘
(625~702) 대사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의 도상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화엄종주였던 영파대사이었기에 그 배치도 법계도에 따라 한 것으
로 보인다.
『오백성중청문』에 기록된 500나한의 구성과 명호는 고려시대에 정해진
이후 전승된 것으로 현재까지 중국이나 일본에서 전해오는 500나한의 구
성과 명호와 다른 점이 주목된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500나한의 구성과
명호가 모두 동일한데, 이 두 나라에서 봉안하고 있는 500나한에는 신라
의 고승이 포함되어 있다. 당나라에서 정중종淨衆宗을 개창할 만큼 이름을
날린 무상無相(680~756) 대사와 밀교密敎의 고승인 오진悟眞(?~?) 화상이 각
각 ‘무상공존자無相空尊者’와 ‘오진상존자悟眞常尊者’라는 이름으로 포함되어
있다.
천하의 무상대사의 사리탑은 지금도 중국 팽주彭州 단경산丹景山 금화사
金華寺에 있다. 오진화상은 소년 시절에 당나라로 건너가 밀교의 고승인 불
공不空(Amoghavajra, 705~774) 화상과 혜과惠果(746~805) 화상, 혜초慧超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