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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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보화루 앞의 적벽.
果(arhat-phala)를 얻기를 바라는 소원도 부디 들어 있기를 기대하면서.
보화루와 마주하고 있는 건너편의 적벽赤壁 아래 맑은 물을 조용히 보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송홧가루가 날려와 수면 위에 소리 없이 앉
는 시간도 고요함이고, 가을날 단풍 사이로 맑은 물에 비치는 푸른 하늘도
고요함이다. 움직이든 멈추어 있든 물을 보고 있으면 물을 보는 것이 아니
라 내 마음을 보게 된다. 물이 고요하니 물에 비추어진 내 마음이 드러나
고 물이 흘러가니 내 마음의 근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유가儒家든 불
가佛家든 수양修養을 통하여 인간 완성의 길을 추구한 도학자道學者들은 고
요함[靜] 속에서 물을 보는 ‘관수觀水’와 ‘관란觀瀾’을 높이 쳤을 것이다. 물가
의 정자에 ‘관란정’이나 ‘관수정’이라고 하는 이름의 현판을 건 이유이기도
하다.
달빛 비치는 고요한 밤에 이 앞에 앉아 있어 보아도 좋다. ‘화영홀생지
월도花影忽生知月到 죽초미동각풍래竹梢微動覺風來’라고 한 옛 사람의 시구가
딱 들어맞는다. ‘홀연히 꽃의 그림자 생겨남에 달이 머리 위에 이르렀음을
알겠고, 대나무 가지 끝이 살짝 움직임에 바람이 불어옴을 깨달았도다’라
는 말이다. 서산에 해가 넘어갈 때 은빛 바다에서 노닐다가 다시 속세로 돌
아왔다. 뒤를 돌아보니 구름은 보이지 않고 높은 하늘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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