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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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화락천의 하늘을 뛰어넘은 욕계 최상위 제6천의 하늘이다. 수행자가
타화자재천의 차원이 약속하는 권력과 쾌락의 유혹에 빠졌다는 뜻이다. 수
행자가 이 유혹에 지는 순간 스스로 궁극의 깨달음을 성취했다고 선언하
거나, 신통력을 자랑하거나, 새로운 교리를 설파한다. 인과를 부정하고,
윤회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계율을 창안한다.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부처
님의 법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본래 갖춘 부처의 종자를 소멸시켜
성불의 길을 끊어버리고 스스로 마구니가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4바라이, 5역죄를 저지르면서도 선정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바
르지 못한 선정은 그 자체가 마구니의 일이다. 음행에 빠지면 선정이 있어
도 마왕이 된다. 음행을 하면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짓
고자 하는 일과 같다. 살생을 하면 선정이 있어도 귀신이 된다. 혹은 귀신
의 왕이 되기도 하고 하늘을 나는 야차, 땅을 기는 나찰이 되기도 한다. 도
둑질을 하면 선정이 있어도 도깨비가 된다. 도둑질을 하면서 깨달음을 구
하는 것은 구멍 뚫린 항아리에 물을 채우려는 일과 같다. 거짓말을 하면 선
정이 있어도 부처의 종자가 소멸한다. 거짓말을 하면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면서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기를 바라는 일과
같다.
그러니 수행자가 저지를 수 있는 죄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깨닫지 못하
고서 깨달았다고 하는 큰 거짓말이다. 이로 인해 타인들의 귀의와 찬탄과 공
양을 바라는 자기 애착의 마구니가 되고, 자신의 견해가 부처님과 같거나 더
뛰어나다는 견해의 마구니가 된다. 이러한 거짓에 한 번 노출되고 나면 칼질
을 받은 패다라 종려나무가 고사하듯 불성이 소멸해 버리고 만다.
원래 패다라 나무는 무성한 잎을 자랑한다. 그 잎을 가공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데 썼으므로 패다라 잎은 경전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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