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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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스스로 부처의 지견을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
렇지만 파암선사와의 선문답에서 보상좌는 일패도지하고 만다. 이에 보상
좌는 자신이 부당하게 꺾였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불 속에 들어가 몸을 태
워 버렸다. 사람들이 그 일을 성스럽게 여겨 사리를 수습하여 파암선사에
게 바쳤다. 파암선사가 사리를 들고 말하였다. “보상좌여! 설사 사리가 부
처님처럼 여덟 섬 네 말[八斛四斗]이 나왔다 해도 결코 인정해 줄 수 없다.
오로지 부모미생전의 한마디를 내놓아 봐라.” 그리고는 사리를 땅에 던졌
더니 피고름으로 변해 버렸다. 보상좌의 영혼은 결국 피고름 차원의 윤회
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고, ‘허망한 명리의 노예가 되어서 생지옥에 떨어
져 영원히 회한悔恨’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소멸불종銷滅佛種’은 『선문정로』의 마지막 장이다. 일반적 글쓰기로 보자
면 결론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성철스님이 가리켜 보이고자 하는 ‘선문의
바른 길’은 ‘소멸불종’의 장에 남김없이 드러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법
문에 의하면 모든 잘못은 앎과 이해로 깨달음을 대신하려는 데서 일어난
다. 그러니 앎과 지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야말로 부처의 종자
를 소멸하는 길이다.
이 길에서 일체의 앎과 견해와 이해와 알아차림[知見解會]은 모두 삿되고
악하다. 그래서 모든 견해들에는 삿됨[邪]과 악함[惡]함이라는 모자가 씌워
진다. 사해악견邪解惡見, 사지악견邪知惡見, 사지악해邪知惡解와 같은 용어
들이 전체 법문에 깔려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앎과 견해가 아
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선문에서는 남김없이 떼어내야 할 혹이다. 그렇게
일체의 견해를 내려놓고 진여법계와 한 몸이 될 때 비로소 법신의 정수리
[毘盧頂 ]를 밟고 노니는 ‘선문의 바른 길’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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