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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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은 승가대학에서 불법과 함께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응시하게 됩
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선배들의 눈으로 평가되고 저녁에는 집합과 점호가
이어집니다. 학승들의 나이는 스무 살 남짓부터 쉰 살까지 다양하지만 진
한 동료애가 저절로 생겨납니다. 이렇게 해서 ‘잘난’ 때를 벗어야 비로소
한 사람의 비구니 스님이 되는 것입니다.
풍번문답風幡問答
불이문 입구에 서 있는 깃발 게양대를 보며 1,300년 전에 있었던 승려들
의 문답을 생각합니다. 홍인의 곁을 떠나 몇 년간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
다가 광둥 시내에 있는 법성사로 나온 혜능(638∼713)의 첫 문답입니다.
어느 날 바야흐로 경을 강론하는데, 거센 비바람이 일어 깃발이 펄
럭이니, 법사가 대중에게 물었다.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이에, 어떤 이는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어떤 이는 깃발이 움직인
다, 하여 제각기 다투다가 강주講主에게 와서 증명해 주기를 바랐
는데, 강주가 판단치 못하고 도리어 행자(혜능)에게 미루니 행자가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강주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움직이는가?”
행자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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