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7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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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
었다.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삶의 의미가 무엇이
냐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고,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종교와 철학을 생각하다가, 『반야
심경』의 ‘눈도 없고 색도 없다’는 말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눈이 있고 색이 있는
세계에서 그것도 병을 앓으며 괴롭게 살다
사진 1. 병고丙古 고익진高翊晋(1934~1988)
가 이제는 ‘도대체 눈도 없고 색도 없는 세 의 젊은 시절의 모습.
계에서 먹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라고 자
문을 하면서 3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면
서 생각의 진전과 사고의 붕괴에 따라 기쁨
과 허탈함이 교차했고, 마침내 왜 사람들이
생사의 괴로움 속에서 헤매는가를 알게 되
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후 불경을 많이 읽으면서 아함·반
사진 2. 동국대 재직 시절 연구실에서.
야·법화의 3부경에 불교의 가르침이 체계
적으로 집약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의
현실적 존재를 분석적으로 관찰해 괴로움의 원인을 밝히고 그 해결책을 제
시하는 아함의 교설이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반야경』에 이르고, 이것이 다
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성불과 중생교화를 설하는 『법화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그는 구도행과 깨달음을 위한 큰 발걸음
을 내딛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병이 예부터 자신을 빛나게 한다’고 하여
병의 한자만 바꾸어 ‘병고丙古’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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