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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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설명한다. <화엄의 사상과 수행론에 돈오점수의 근거가 있다면 선종
             의 돈오점수와 통한다. 따라서 화엄종과 선종의 반목反目은 해소될 수 있
             다.>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눌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화엄

             의 십신十信 초위初位에서 ‘자기 마음의 근본보광명지[自心根本普光明智]’를

             깨닫는 것은 돈오이지만 ‘이해가 드러낸 것[理智現]’이므로 ‘이해를 통한 돈
             오’이다. 그리고 ‘지적知的 이해로 인한 돈오’는 분별 사유의 범주에서 벗어
             난 것이 아니기에 ‘분별 사유로 인한 번뇌 망상을 다스리려는 지속적 수행

             [漸修]’이 필요하다. 그래서 돈오점수가 수행의 준칙準則이 된다는 것이다.

               성철은 지눌 사유의 이 대목이 지닌 문제점을 꿰뚫어 본다. 성철이 ‘화엄
             적 해오에 의거한 돈오점수’의 문제점을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불교
             교학과 수행론을 관통하고 있는 ‘이해수행과 마음수행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해수

             행과 마음수행의 차이’에 대한 성철 안목
             의 수립에는, 그의 선문禪門 탐구와 간화
             선 수행 체험이 결정적 조건으로 작용했

             을 것으로 보인다. 불교사상사에 대한 탐

             구에서 얻어진 교학적 안목과 선종사상
             탐구 및 화두 참구에서의 체득이 결합되
             어 수립된 것이, ‘이해수행의 길’과 ‘마음수

             행의 길’을 식별하는 그의 안목이었다.

               성철은 두 수행 길의 구분에 그치지 않
             는다. <이해수행과 마음수행은 구별되어
             야 한다. 그리고 선종의 선문에서는 ‘마
                                                    사진 2.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 지눌 진
             음수행의 길’이 종요宗要라는 점을 분명                      영(보물 제16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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