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고경 - 2023년 11월호 Vol.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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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이 선 수행의 길에서 제대로 작용하는 전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
음은 ‘모든 이해 현상을 가능케 하는 근거로서 이해를 포괄하고 있는 상위의
지위’이기에, 마음수행은 이해수행으로는 이르지 못하는 상위 범주에서의
성취를 가능케 한다. 성철의 길은 굴절되고 묻혀 온 마음수행의 길에 눈뜨게
한다. 오염되고 가려진 마음수행의 길을 다시 드러내고 보전해 가게 한다.
지눌과 성철이 합세하여 열어주는 길은, <이해수행과 마음수행이 각자
의 구분되는 역할을 제대로 보전하면서도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이 고도화
되는 길>이다. 이해수행과 마음수행은 각자의 구분되는 역할을 제대로 드
러내면서 활발하게 상호작용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수행은 ‘사실 그대로에
부합하는 이해’를 향해 머물지 않고 나아갈 수 있고, 마음수행은 그 창발적
이해 구성력을 ‘사실 그대로에 부합하는 이해’라는 구체적 내용으로 실현
할 수 있다.
이해수행과 마음수행이 이렇게 상호작용하면, 양자兩者의 차이가 통
섭通攝되고 고도화되면서 정점을 향한다. 그리고 정점의 융합 단계에서는,
<그 어떤 이해도 붙들거나 그에 머물러 제한받지 않으면서 이해를 굴리는
인지능력 지평>, <‘사실 그대로에 부합하는 이해’에도 갇히거나 붙들어 집
착하지 않는 좌표에 역동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실 그대로에 부합하는
이해’를 운용하는 인지능력 지평>, <모든 유형의 관념·느낌·욕망·행
위·의지·심리·이해 양상에서 끝없이 풀려나면서 ‘사실 그대로에 부합
하는 이로운 관념·느낌·욕망·행위·의지·심리·이해 양상’을 역동적
으로 조정하면서 펼치는 인지능력 지평>이 밝아진다. 지눌과 성철이 함께
열어주는 길에서 피어나는 만다라曼陀羅의 장관壯觀이다. 오래전 붓다가 열
어준 중도中道의 길이면서 지금 우리가 넓혀 가야 할 길, - 그 ‘오래된 새
길’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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