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고경 - 2023년 12월호 Vol.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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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에 15년 동안 주석하며 1,700여 명에 이르는 제자들을 길러 낸 당대 최
고의 고승이었다. 그는 유식학, 화엄학, 천태학, 정토교 등을 모두 통합하
여 심종心宗으로 통일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선정쌍수禪定雙修, 선교일치禪
敎一致 등의 흐름으로 물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명성은 고려
에도 알려져 광종光宗(재위 950~975)은 36명의 승려들을 송宋나라로 보내
그의 종지를 배우게 했을 정도였다. 그의 대표적 저술인 『종경록宗鏡錄』은
지금까지도 읽힌다.
백련사 도량을 일구고 백련결사를 맺다
이후 요세화상은 천태교법만을 설하고 결사의 실천으로 대중들과 함께
참회행懺悔行을 닦는 것에 중점을 두었는데, 추우나 더우나 매일 53부처들
에게 12번씩 예경하는 행을 실천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탐라耽羅를 오
가는 곳인 탐진현耽津縣의 유력 가문인 탐진 최씨의 최표崔彪, 최홍崔弘과
이인천李仁闡 등이 요세화상을 찾아와 대중들은 늘어나고 절이 좁으니 자
기 고을의 만덕사 터에 절을 지으면 좋겠다고 청하였다. 이에 요세화상이
보니 과연 터가 좋아 1211년(희종 7) 봄에 공사를 시작하고 문인인 원형元瑩,
지담之湛, 법안法安 화상 등에게 일을 감독하도록 하였다. 이 불사를 시작
하기 1년 전인 1210년에 지눌화상은 이미 입적하였다.
1216년(고종 3) 가을에 절이 어느 정도 지어지자 법회를 열고 문도인 천
인天因(1205~1248) 화상 등과 함께 천태 수행을 본격적으로 행했다. 1221
년(고종 9) 봄에는 대방帶方(지금의 남원) 태수 복장한卜章漢의 요청으로 관내
백련산白蓮山에 또 다른 백련결사를 개설하여 2년간 머물기도 했다. 1223
년에 최표 등의 간곡한 요청으로 백련사로 다시 돌아와 도량을 크게 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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