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고경 - 2023년 12월호 Vol.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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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는가?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이 하나 있다. 지눌화상과 요세화상이 결사운동에
뜻을 같이하기로 하고 조계산 즉 송광산으로 거처를 옮긴 1200년은 나중
에 고려와 조선의 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송宋나라의 주희朱熹
(1130~1200)가 세상을 떠난 해이다.
주자는 불교를 적극 배척하고 유학을 정통으로 정립시킨 인물이고, 고
려 말과 조선 초기에 유가들의 배불론은 그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늘 논란이 되는 문제가 주자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
는가 하는 문제였다. 즉 주자의 불교배척론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도 그랬지만,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한반도
에서도 불교배척의 거친 바람이 주자학을 근거로 하여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주자의 학설을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받들던 조선에서 이념논쟁이 얼마
나 심각했으면 젊은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으로 들어
가 불가에 잠시 의탁했던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 선생마저 진짜 유
자儒者가 맞는가 하는 의심과 공격을 받을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지식 이
전에 이념이 경직화되고 거기에 자신들의 이익까지 모두 걸고 싸웠으니 철
학과 지식이 졸지에 사람 잡는 무기로 변해 버렸다. 조선 500년 동안 이런
싸움에서 희생된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그 가운데는 참으로 못된 인간들
도 적지 않지만, 실로 나라에 필요한 인물들도 많이 있었다.
아무튼 조선에서는 배불이 강력한 지배이데올로기로 되었고, 주자학이
목숨을 건 이념전쟁의 기준점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주자가 불교의 영향
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는 조선에서는 지식사회에서 학설논쟁을 넘어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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