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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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매를 내어서 받들어 태평관으로 돌아갔다.
위의 세종대 기록을 정리하자
면 다음과 같다. 태조가 1396년
송림사에서 가져온 것은 불두
골·사리·패엽경이었다. 이 가
운데 치생사리 4매를 흥천사 사
리각에 봉안하였다. 태조가 훙
사진 2. 부처님 치아사리. 사진 건봉사 홈페이지.
서한 후 흥천사 사리각에 있던
치생사리 4매를 궁궐 북쪽에 불당을 지어 안치하고, 사리각에는 분신사리
4매를 봉안하였다.
1419년 9월 1일 명나라 사신 황엄이 흥천사 사리각의 석탑을 열어 보았
는데, 동행했던 조선 신하가 석가의 치생사리라고 하였다. 이튿날(2일)
상왕(태종)은 사람을 보내 황엄에게 사리각에 봉안된 사리는 분신사리이
므로 궁궐 북쪽에 안치된 불두골과 치생사리를 진상하겠다고 하고 태평
관에 가서 연회를 베풀었다. 황엄이 술에 취해 방으로 들어가자 사신으
로 함께 온 왕현이 사리 4매를 상왕에게 주며 비밀로 하자고 했다. 이때
왕현이 상왕에게 준 4매의 사리가 어떤 사리인지는 불분명하다. 9월 7
일 황엄이 문소전 내불당에서 석가사리 4매와 전국에서 수집한 550매의
사리를 가져 갔다. 또 9월 8일 흥천사 사리각에 있던 불두골과 사리 4매도
가져갔다.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1510년(중종 5) 3월에 있었던 화재로 사리
각이 소실되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볼 때, 통도사에 있던 사리 4매와 불두골은 송림사 →
흥천사 사리각 → 궁궐 북쪽 불당에 봉안되었다가 명나라 사신 황엄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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