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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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 자字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종벌에서 밀랍을 추출한다. 벌들은 겨울
             에 꿀을 꽉 채워 집을 짓게 된다. 꿀을 다 채우고 나면 벌들이 지어 놓은 꿀
             방의 칸들을 막는 마감재의 재료가 밀랍이다. 금속활자가 만들어지려면 먼

             저 토종벌의 벌집에서 시작한다. 으깬 벌집을 채반에 올려놓으면 꿀은 바

             닥으로 떨어지고 위에 찌꺼기가 남는데 이것을 끓여서 밀랍을 추출하게 된
             다. 여러 번 추출 과정을 통해서 정밀한 밀랍이 마련되면 글을 새겨 넣을
             수 있다. 만들어진 작은 밀랍 글 조각들을 서로 연결하여 쇳물길을 만들어

             준다. 글새김도 정교하지만, 쇳물길을 잘 만들어 내지 못하면 활자의 성공

             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밀납주조법과 주물사주조법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1200도 고온의 청
             동 쇳물을 붓는 과정이다. 뜨거운 쇳물은 글자 길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이때 더도 덜도 말고 정밀한 양과 온도로 채워져야 식었을 때 완성도 높

             은 활자가 태어나게 된다. 온도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긴장된 시간이 흐
             른 후, 흙들을 털어내면 그 속에서 빛나는 활자들이 하나둘 그 모습을 드
             러낸다.




                  “저는 모래 속에서 활자가 드러날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예쁜 꽃이라고 한들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이라
                  고 한들 저에게는 크게 감흥이 없어요. 그런데 활자를 꺼낼 때, 쇳

                  물을 부어서 제가 원하는 그런 활자들이 나올 때 그렇게 큰 감흥과

                  성취감이 없어요. 저는 힘든 일 어려운 일들 속에서 누구의 탓을
                  하거나 불평이 없답니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이 순간에 만족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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