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5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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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찬술한 「쌍
계사진감선사비명」에는
혜소의 제자로 ‘법량法諒’
의 이름만 보일 뿐 도헌
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
다. 만약 혜소의 법을 도
헌이 이었다면 도헌과
혜소의 비문을 동시에
찬술한 최치원이 그러한
사실을 분명 기록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혜소의
법이 도헌에게 전해졌다
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즉
사진 2.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
고려 초에 이르러 북종
선의 법맥은 고려 선종 내부에서 의도적으로 지웠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중국 선종이 남종선 일색으로 변한 것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종선 전래 이전의 한국선의 모습과 사상적 특징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는 원효의 『금강삼매경론』과 법랑-신행 그리고 정중무상
등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이들이 활약한 시기는 통일신라 초기 7세기 말
에서 8세기 전반이다. 원효(617~686)와 법랑은 동시대의 인물이며, 신행
(704~779)과 무상 또한 동시대의 인물이다. 중국에서는 법상종의 현장
(602~664)과 제자들, 화엄의 현수법장(643~712), 조계혜능(638~713) 등이
활약하고 있었고, 신라의 수많은 승려들이 당나라로 구법의 길을 떠났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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