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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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온전한 생명체가 될 어떤 생명의 ‘연속성(continuity)’과 ‘잠재성(potentiality)’
          을 고스란히 인정한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뭇 생명체들을 대하는
          붓다의 정서가 이럴진대 깨달음을 얻어 열반을 성취할 가능성이 어떤 존

          재보다도 높은 인간이 한순간의 괴로움을 모면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

          는 것은 불살생계의 의도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반불교적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살 사례에 대한 붓다의 입장



           붓다는 종종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의 자살과 미처 그러한 경지에 도달
          하지 못한 일반 재가자의 자살을 구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자

          의 경우에는 탐진치貪瞋癡로 상징되는 모든 욕망을 끊은 가운데 말 그대

          로 허물없는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감각적인 쾌락
          을 추구하려는 갈망인 욕애欲愛(kāma-taṅhā)와 이를 계속 즐기며 살고 싶
          은 욕망인 유애有愛(bhava-taṅhā)로부터 결핍이나 환멸을 느낀 나머지 또

          다른 욕망인 비유애非有愛(vibhava-taṅhā)에 집착한 결과의 죽음으로 보는

          것 같다.
           여기서 비유애는 현재의 생명을 끊으려는 또 다른 삿된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붓다가 왁깔리, 앗사지, 고디까 및 찬나 비구의 자살을

          나무라지 않은 것은 그 비구들이 모두 아라한과를 얻은 다음, 깨달음의 경

          지에서 충분히 자율적 판단을 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2)
           한편, 붓다가 설한 부정관의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수행자들의 집




          2) 안양규, “누가 허물없이 자살할 수 있는가”, 『불교평론』 17호(2003), pp.12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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