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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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자살과 사악한 무리의 꾐에 빠져 죽음
을 선택한 재가 신자의 경우가 있다. 이
는 또 다른 쾌락을 얻기 위한 이기적 욕
망에 사로잡힌 경우의 자살로 불살생계
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행동
이라고 했다. 이쯤에서 우리는 비구들의
자살 사례를 한 번 더 꼼꼼하게 읽어 볼
필요가 있겠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경
사진 2. 세계 자살 예방의 날 포스터.
전의 어느 구석에서도 붓다가 자살을 직
접 권유하거나 유도하고 있지 않다는 정
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데미언 키온과 같은 불교 윤리
학자는 바로 이런 지점을 콕 집어 상기시킨다.
그에 따르면 붓다는 비구들의 자살을 적극적으로 ‘용인(condonation)’한
것이 아니라 단지 소극적으로 ‘면책(exoneration)’해 준 것에 불과했다. 영어
권에서 면책과 용인은 엄연히 다른 뉘앙스를 가진 단어로 알려져 있다. 다
시 말해 “면책은 죄의 부담을 (간접적으로) 덜어주는 것인 반면, 용인은 수행
한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승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붓다의 반응은 노쇠한 비구들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이자 공감
이었을 뿐(면책) 그들의 행동을 교학적으로 추인한 것은(용인) 아니었던 것
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재밌는 것은 키온이 붓다의 처신을 예수가 간음한
여자에 대해 보인 반응과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가 “나는
그대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간음을 승인해서가 아니라 죄를 지
은 불쌍한 여인을 향해 그야말로 동정심을 베풀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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