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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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넉넉하게 될 것입니다.”                 - 『고려사절요』 권35, 공양왕 3년.


               박초의 글은 성리학자로서 배불에 관한 최초의 상소문이면서, 고려 말

             조선 초 성리학자의 불교에 대한 인식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내용이

             기도 하다. 그는 백성의 출가를 금지시키고 경전을 불살라 불교를 영구히
             없애 버리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 건국 후 성리학자 또는 사헌부 등에서 올린 상소문을 보면

             불교의 말살을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지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불교 관련 상소에서 가장 많은 내용은 타락한 승가를 어떻게 정화시
             킬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사헌부에서 또 상소하기를, … 아홉째, 승니僧尼(비구와 비구니)를 도

                  태淘汰(쓸모 없는 것을 가려냄)시키는 일입니다. … 지금 평민들과 섞여
                  살면서 혹은 고상한 말과 미묘한 이치로써 선비들을 현혹하기도
                  하고, 혹은 삶과 죽음의 윤회 업보설로써 어리석은 백성에게 협박

                  하기도 하면서, 마침내 풍속을 방탕한 데로 흐르도록 하고 되돌아

                  오지 못하게 합니다. 심한 자는 살찐 말을 타고 가볍고 좋은 옷을
                  입으며 재물을 늘리고 여색女色을 탐하면서 하지 못하는 일이 없으
                  니,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

                  다. 원하옵건대, 저 무리들을 모아 학문과 덕행을 자세히 살펴서,

                  학문이 치밀하고 덕행이 닦여진 자들은 그 출가의 뜻을 이루게 하
                  고, 나머지는 모두 환속시켜서 각기 백성으로서 업業에 종사하게

                  하소서.”                                        - 『태조실록』 1년, 1392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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