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P. 84

위의 사헌부 상소는 실행되지 못하였다. 태조는 “승니를 도태시키는 일
          은 건국 초기에 갑자기 시행할 수 없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사헌부에서
          언급한 승려의 도태는 타락한 승려를 가려내어 환속시키고, 훌륭한 승려

          는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선비들을 현혹하고 백성에게 협박하며, 재물을

          늘리고 여색을 탐하는 이들을 타락한 승려의 부류로 언급하고 이들을 가
          려내자고 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태조는 개국 초라는 이유로 사헌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학자들은 지속적으로 불교정화를 요

          구하였다. 그런데 타락한 승려를 도태하기 위해서는 우선 훌륭한 승려와

          타락한 승려를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1395년(태조 4) 대사헌 박경은 승려
          를 세 부류로 분류하였다.



              “승려에 세 가지 품격이 있으니, 음식에 배부르기를 구하지 않고

              거처에 일정한 곳이 없으며 승려들이 머무는 당堂에서 마음을 수행
              하는 자는 상등이요, 법문을 강설하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자는
              중등이요, 재齋를 맞이 하고 초상집에 달려가서 의식衣食을 엿보는

              자는 하등입니다.”                           - 『태조실록』 4년, 1395년 2월 19일.



           박경은 세 부류의 승려 가운데 하등과 그 이하의 승려들을 타락한 승려
          로 규정하고 국가 부역 등에 동원하여 노동 생산에 활용하자고 하였다. 그

          리고 실제 하등의 승려들을 궁궐 조성에 동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가

          의 승가 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의 악습은 고쳐지지 않았던 것 같
          다. 불교를 숭신했던 태조마저 승려들이 서로 소송하는 일이 잦아지자 도
          당都堂에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린다.






          82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