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 - 고경 - 2024년 2월호 Vol.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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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의 사원 조사 명령과 태종의 불교정화 정책


                  “오늘날 각 사찰의 주지들이 산업을 힘써 경영하고, 심지어 여색까

                  지 범하면서도 뻔뻔스럽게 부끄러운 줄 모른다. 그가 죽은 뒤에는

                  제자들이 사사寺社와 노비를 법손法孫에게 전하는 것이라 하여 서
                  로 소송하는 일까지 있다. 내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이러한 폐단
                  을 혁파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장경사 승려 정의定宜가 또 법

                  손이라 일컫고 경상도의 자화사를 청구하니, 지금 건국 초에 마땅

                  히 이러한 폐단을 고쳐야 하겠다. 서울 안에서는 사헌부가 담당하
                  고 외방에서는 감사監司가 담당하여 사사寺社의 전각에 속한 노비
                  와 전지田地, 그리고 지위가 높든 낮든 승려 법손과 노비의 수를 조

                  사하여 아뢰어라.”                             - 『태조실록』 6년, 1397년 7월 5일.



               태조는 불교를 신앙하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별개의 문제로 인
             식하고, 불교의 여러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승려의 소속과 그 법손, 그리

             고 사원에 속한 노비와 전지 등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타락한 승려

             의 도태정책은 배불정책이라기보다 오히려 수행하는 청정한 승려를 보호
             하는 정책에 가까웠다. 타락한 승려에 대한 압박은 청정한 승려를 보호하
             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태조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종 역시 타락한 승려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승려에 대해 논하기를 “탐욕에 승려보다 더 심한 자가 없
             다. 주면 좋아하고 주지 않으면 원망한다.”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정종은
             타락한 승려들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짧은 재위

             기간 권력 다툼의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불교계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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