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9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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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였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신 지 오래되었고 중생의 근기가 이전과
같지 않으므로 때에 따라 옛날에 해석된 이치를 그와 다르게 번역하고 대
조하였다. 즉 환자의 병세에 따라 적절한 약을 처방해야 하는 것처럼 수행
자들이 아직 성문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지만 보살도를 실천하며 드높였다.
신행은 모든 수행자들을 공양하며 직접 노역에 종사하였다. 그의 명성
을 들은 자들은 그를 따랐으며, 다른 사원들도 신행이 행한 6시예참六時禮
懺과 걸식을 업으로 삼았다. 육시예참은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에 의하면
하루를 오전, 정오, 오후, 저녁, 한밤, 새벽으로 나눠 하루 여섯 번 시방의
부처님께 예배하고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선정수행을 하면 백만억아승지
겁의 죄가 제거되는 수행을 말한다.
또한 신행은 무진장행을 중시하여 보시 활동을 강조하였다. 그는 『화엄
경』의 무진장법과 무진장행을 적절하게 실생활에서 실천하였다. 이는 악
업을 제거하고 선업의 공덕으로 성불할 수 있는 실천수행이며 현재의 사
회구제사업과 그 뜻을 같이한다.
신라승 원광법사는 600년 신라로 귀국하여 가서갑에 점찰보를 두고 점찰
법회를 처음 개최하였다. 『점찰선악업보경』을 보면 부처님이 기사굴산에 있
을 때 견정신보살이 묻는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상법시대를 지나 말법시
대가 오면 중생들을 어찌 불법으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이 지장보살
에게 설법하라고 하자, “말세에 장애障碍를 없애려고 하는 자는 목륜상법木
輪相法으로 지난 세상의 선악업과 현세의 고락苦樂·길흉吉凶을 점찰하여야
2)
한다.” 라고 하였다.
점찰법의 소의경전 『점찰선악업보경』은 중국에서 대략 580년에 유포되
2) T17/839/902/b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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