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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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고 있다. 태무제는 439년 화
북지역을 통일한 군주이며 446
년에 폐불을 단행하였다.
윈강 11굴 동벽 상층에 있는 태
화 7년(483) 명문을 보자(사진 2).
비문은 가로 78cm 높이 37cm이
고, 24행 342자이다. 비문 상단 사진 2. 윈강 11굴 동벽 상층 태화 7년(483) 명문.
에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문수
보살이 자리한다. 비문 좌우에 합장하고 서 있는 신도와 부녀자는 총 54인
이다. 이들은 선비족 두건과 왼쪽여밈 복식을 하고 있다. 비문에 의하면 현
재 그들은 말법[生在末代] 시대에 있다고 하였다. 북위 수도 핑청(平城, 현재
다퉁大同) 신도들이 95구의 석불을 조성하여 북위가 흥하고 기원하는 모든
이들이 다스리는 자가 되고 영원히 고통과 이별하기를 원한다. 중생들은
선지식을 배우고 행하여 영생을 누리길 원한다.
이와 같은 태화 7년(483) 명문은 남악대사 혜사가 말한 말법시대 434년
부터 약 50년이 지난 후이며, 당시 폐불을 경험한 북위 상류층이 이를 참
회하기 위하여 95구의 석불을 조성하고 있다.
그로부터 100면 후 수(581〜618) 나라 승려 정완(?〜639)은 말법을 대비하
여 방산석경을 제작하였다. 현재 중국 북경에서 남서쪽으로 7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석경산과 운거사에서 그가 남긴 석경을 볼 수 있다. 그는 석경
산에 있는 9기의 석굴 중 7기를 개착하였고, 그의 석경 사업은 수양제(재위
605〜617)의 황후 소蕭씨 후원을 받았다. 그가 『대방광불화엄경』 석경을 제
작하고 남긴 제기(사진 3)를 보면, 첫째, 미래세의 중생을 위해 제작하였다.
둘째, 불교가 소멸할 것을 걱정하고 중생을 제도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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