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P. 120
기 시작하여 593년까지 유행하였다. 이 경전은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상권은 점찰하는 방법을 기록하였고 하권은 대승을 구하는 방편으로 여래
장사상을 중심교리로 삼고 있다. 원광은 『여래장경사기』 3권과 『대방등여
래장경소』 1권을 저술하였다. 여래장사상은 중생이 본래 여래가 될 수 있
는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다는 대승사상이다.
따라서 원광법사는 중국의 점찰법회를 인지하고 귀국하여 신라에서 실
천하였고, 가난한 중생을 구제하고 보살도를 중시하는 삼계교 사상을 접
목시켰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점찰법회에서 과거의 선악업과 길
흉을 점치고 중생의 죄업을 소멸하고자 하였다. 점찰법회를 베푸는 데 필
요한 비용은 점찰보를 설치하여 마련하였다. 이는 진평왕 때 활동한 비구
니 지혜智惠가 선도산仙桃山 안흥사 점찰법회에서 삼계교의 53불과 산신의
예배를 강조하며 불전을 수리한 행적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점찰법회와 삼계교는 말법시대의 제3계 중생을 대상으로 삼은 실천종
교였으며 대중들의 호응도가 높았지만 중국에서 점찰법회는 593년, 삼계
교는 600년에 금지되었다.
하지만 통일신라 경덕왕 때 진표는 대구 동화사에서 미륵보살로부터 간
자簡子를 받아 점철법회에서 사용하였다. 이는 신라의 점찰법회가 지장보
살신앙뿐만 아니라 미륵신앙과 연관되며 수행자들이 계법을 실천하여 참
회불교를 확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법사상과 석경
그렇다면, 남악혜사(514〜577) 이전의 말법사상은 어떻게 인지되었을까?
혜사는 말법이 434년에 시작했으며, 북위 태무제(재위 423〜452) 시기라고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