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0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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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광활한 성주사지.
의 자가 위흔魏昕여서 두 사람을 동일 인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민애왕
당시 김우징(신무왕)의 군대를 김양이 지휘할 때 김흔은 이에 맞서 싸우다
가 실패하여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당나라에서 무종이 죽고 선종이 즉위한 847년에 무염은 성주산문을 개
산한다. 문성왕은 오합사의 이름을 ‘성주사聖住寺’로 바꾸고 대흥륜사에 예
속시켰다. 이후 성주산문은 이름을 꼽을 만한 제자가 2천 명에 이르렀고,
따로 자리를 잡아 도량을 연 제자로 승량僧亮·보신普愼·순예詢乂·심광心
光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하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무염은 성주사를 본산으로 삼아 42년을 교화하였는데, 문성왕·헌
안왕·경문왕·헌강왕·정강왕·진성여왕 등 여섯 왕이 모두 그를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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