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4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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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기에 성본스님은 “『선문보장록』의 무설토론은 무염의 선사상을 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나말여초의 선교의 대립적인 시대에 전통적
인 교학불교에 대한 선불교의 우월한 입장을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무염
국사의 유명한 무설토론과 그의 권위를 빌린 선종의 교판적 견해를 살펴
5)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성주산문의 쇠퇴
최치원의 비문만이 홀로 남아 있는 성주사지는 그 찬란한 모습을 감춘
채 고요 속에 잠들어 있다. 신라 땅에 남종선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성주
산문의 전통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무염의 생활 태
도는 중국 선종의 ‘청규’를 바탕으로 한 교단 정비와 ‘선농일치禪農一致’의
건강한 노동관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성주산문의 흥망성쇠
는 무염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신라 왕실과의 관련성이 짙다. ‘동방대보살’
로 추앙받았던 무염의 소박하고 건전한 실천행을 가지고 선문을 유지하는
정신적 바탕으로 삼아 ‘청규’ 같은 규범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채 정치세력
의 후원에 의존하여 사세를 유지하려 했던 점이 결국 쇠망의 길로 이끈 것
이 아닌가 생각된다.
5) 정성본, 『나말선종의 연구』, 민족사, 1995,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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