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2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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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국사무설토론』이라 밝히고 있고 또 『조당집』 ‘숭엄사 성주사 고 양조국
사’조에서도 ‘무설토’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무
염이 무설토론을 주장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최치원의 비문에
는 ‘무설토론’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아서, ‘무염이 과연 무설토
론을 주장하였는가?’ 하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최치원은 낭혜의 비문에서 “어떤 이는 교와 선이 같지 않다고 하나, 나
는 그러한 종지를 보지 못하였다. 말은 본래 많은 것이라 내가 알 바 아니
다. 대략 같다고 해도 허락할 만한 것이 아니요, 다르다 해도 그른 것이 아
니다. 고요히 앉아 참선하고 교묘하고 삿된 마음을 버리는 것이 성인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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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운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천책이 『선문보장록』에서 선은 무
설토에, 교는 유설토에 배대하고서 선이 교보다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하
고 있는 것과는 분명 그 결이 다르다.
『조당집』에는 무설토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무염)선사에게 질문하였다. 「무설토에는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는데, 어찌 서천의 28조에서 당대 6조에 이르기까지 법
의 등불이 전하여 지금까지 법등이 끊이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
답하였다. 「세상에 유포된 모든 것은 올바른 전법은 아닌 것이다.」
또 질문하였다. 「한 조사에게 무설토와 유설토의 두 가지가 있습니
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렇다. 그러므로 앙산이 말하기를 ‘두
입에서 한결같이 무설이니 이것이 곧 나의 종지이다[兩口一無舌 卽是
吾宗旨].’라고 한 것이다.」 또 물었다. 「한 조사에게 두 가지 국토가
2) 최치원 찬, 『대낭혜화상 백월보광지탑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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