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9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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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되어서야 부모의 허락을 받고 복당현 영석산에서 수업하였다.” 라고
한다.
여기에서 ‘구경’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유학에서 중시하는 『주역』,
『상서』, 『시경』, 『주례』, 『의례』, 『예기』, 『춘추좌전』, 『춘추공양전』, 『춘추곡량
전』 등을 말하니, 본적이 어려서 유학의 경전을 공부했음을 알 수 있다. 특
히 『송고승전』 권13에 실려 있는 전기에서는 “그 고을은 당唐 시절에 관직
을 많이 내었고, 선비들이 머물러 유풍儒風이 일어나 소직하小稷下라고 불
렀다. 본적은 어려서 노풍魯風(선비의 기풍)에 물들어 많은 공부를 하였다.” 7)
라고 본적이 유학을 공부한 배경을 기술하고 있다.
『조당집』의 전기에는 “25세가 되자 은사가 비로소 수계受戒를 허락하였
고, (구족계를 받은 후엔) 앉고 눕는 위의威儀가 마치 오랫동안 익힌 것과 같았
다. 바로 방외方外로 행각을 나서서[雲遊] 처음 동산의 법연法筵을 만났다.” 8)
라고 한다. 이로부터 본적은 구족계를 받고 바로 동산에 주석하는 양개를
참알했음을 알 수 있다. 『경덕전등록』의 전기에서는 이 시기를 함통咸通 연
간(860~874)이라고 하는데, 이로부터 본적이 양개를 참알한 것은 8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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쯤이고, 양개의 입적(869) 몇 년 전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본적이 양개를 처음 참알하여 나눈 대화는 거의 모든 전기의 내용이 비
슷하다. 일본 혜인慧印이 교정한 『무주조산원증선사어록撫州曹山元證禪師語
錄』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하고 있다.
6) 靜, 筠編, 『祖堂集』 卷8(補遺編25, 455a), “少習九經, 志求出家, 年十九父母方聽, 受業於福唐縣靈石山.”
7) [宋]贊寧, 『宋高僧傳』 卷13(『大正藏』50, 786b), “其邑唐季多衣冠, 士子僑寓, 儒風振起, 號小稷下焉. 寂少染
魯風率多强學.”
8) 靜, 筠編, 『祖堂集』 卷8(補遺編25, 455a), “年二十五, 師方許受戒, 而擧措威儀, 皆如舊習. 便雲遊方外, 初
造洞山法筵.”
9)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7(大正藏51, 336a), “唐咸通初禪宗興盛, 會洞山价禪師坐道場, 往來請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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