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24년 4월호 Vol.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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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에서 본 고봉밥이라고 불리던
밥그릇 모양을 떠올려 본다. 밥만 수북이 담겼
을 뿐 반찬은 희멀건 김치나 장독대에서 막 꺼
내 온 무장아찌가 고작이었다. 그렇다 보니까
밥심으로라도 고된 농사일을 감당해야만 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
서 새참이란 식습관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
다. 그만큼 쌀과 보리의 사회경제적 의미도 컸
사진 1. 육식의 야만성을 폭로한
제레미 리프킨의 책 『육 다는 말이다.
식의 종말』(시공사, 2008).
하지만 현대사회의 바쁜 삶은 농업사회의
밥심이 예전처럼 필요하지 않게 된 모양이다. 먹거리도 다양해지고 고기
가 들어간 온갖 종류의 맛있는 음식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쌀을
비롯한 곡물 소비의 감소와 육류 소비의 증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
질 전망이다. 문제는 고기 위주의 음식문화가 동물의 생명권에 대한 각성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및 건강의 위협과 같은 많은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
다는 점이다.
인간의 밥상에 오르는 고기들의 짧은 삶
거의 매일 우리들의 밥상에 오르는 음식이 되기 위해 희생당하는 생명
체들의 짧은 삶은 그야말로 비참하기 짝이 없다. 아니 끔찍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먹어 왔던 고기반찬
을 윤리적으로 문제 삼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우선 나 자신부터 그러한 지적과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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