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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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마음과 하나로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손오공이 수보리 조사에게 배우고 수행하는 과정은 문밖[門外]→입문入
門→승당昇堂→입실入室의 궤적을 그린다. 처음에 문밖을 맴돌던 손오공은
동자의 안내를 받아 동굴 속의 화려한 누각과 고요한 수행처를 목격한다.
그 동굴 깊은 곳에서 손오공은 스승이 시키는 대로 생활 속의 제반 범절을
익히면서 자신도 모르게 진리의 흐름에 들어가게 된다. 입문이다. 그런 뒤
스승의 법문이 남김없이 이해되는 눈뜸을 체험한다. 승당이다. 승당 이후
손오공은 스승의 암시에 따라 야반 3경에 스승의 방으로 들어가 스승과 한
마음으로 만난다. 이것이 입실이다.
문밖[門外], 소나무 위에서 놀기
나무꾼의 도움을 받아 영대방촌산 사월삼성동에 도달한 원숭이 왕은 그
앞 소나무 위에서 논다. 간절히 찾던 스승이 가르침을 펴고 있다는 동굴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째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나무 위에서 노는 것일까?
여기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의 두 의미가 있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는 원숭이 왕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그냥 나무
위에서 논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나무는 원숭이의 삶의 현장이다. 원숭이는 마음 밖에 별도의 진리가 있
지 않다는 사실, 지금의 이 현장 외에 진리가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현장을 대면하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그때 진리의 동굴 문이 열리고 동자가 나타난다. 동자는 자아
의 벽이 없는 천진한 존재라는 점에서 진리에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한다.
문수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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