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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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이 말씀하신다. “그대가 상대하는 대상들(6진)과 그것을 인식
하는 감각기관들(6근)을 내려놓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인식과 분별
(6식)까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태어남과 죽음을 벗어나는 길
입니다.”
집착을 내려놓았다는 자의식 자체가 새로운 집착이다. 그 내려놓음을
자기의 정체성으로 삼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새 가지를 잡으
면서 옛 가지를 놓는 원숭이의 나무타기와 같다. 아집을 내려놓았다면서
법집에 빠져버리는 이러한 상황은 대승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제대로 된
수행이 아니다. 다행히 원숭이 왕은 동자가 나타나는 순간 잡고 있던 가지
를 모두 놓고 나무에서 내려온다.
입문入門 1, 고요한 거처와 화려한 누각
원숭이 왕이 동자의 안내를 받아 동굴에 들어가 보니 점입가경漸入佳境의
경계가 열린다. 동굴은 수많은 고요한 거처[靜室幽居]와 화려한 누각[珠宮貝
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요함과 화려함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
러니까 그것은 수행의 바른길을 제시하기 위한 비유이고 상징이다. 먼저
고요한 거처는 선정을 상징한다. 나와 대상이 하나로 만나는[心一境性] 것
이 선정이므로 양변에 의한 갈등이 사라져 고요하다.
화려한 누각은 모든 것을 놓치지 않는 밝은 관찰을 상징한다. 주체와 대
상이 한 몸으로 통일된 상태에서 알아차리는 일이므로 한 방울의 물조차
버릴 일이 없다. 이처럼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을 때 수행에 진전이 있게
된다. 원숭이 왕은 고요함과 화려함의 어느 한쪽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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