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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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 자성에 실체가 없으니
[性空] 성이 없다고 하는 겁
니다.
원숭이 왕과 수보리 조사 간의
대화와 완전히 겹친다. 불성에
대한 이러한 대화는 6조 혜능스
님이 5조 홍인스님을 찾아갔을
때 또다시 재연된다. 홍인스님이
“남방 오랑캐가 어떻게 부처가
사진 2. 4조 도신선사.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혜
능스님이 “사람에게는 남과 북의 구별이 있겠지만 불성에 무슨 차별이 있
겠습니까?”라고 반문하듯 대답한 일이 그것이다.
불성을 주제로 하는 이 대화는 그 스승이 선종 조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원래 수보리 조사는 공(수보리)과 불성(조사)을 통
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이름이다. 수보리 조사가 동굴 속의 옥 좌대[瑤
臺]에 앉아 있는 일 또한 공(동굴)과 불성(옥 좌대)의 결합을 형상으로 드러
낸 것이다. 여기에서 동굴은 비어 있으므로 공이다. 옥으로 된 좌대[瑤臺]
는 불변성과 부동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불성의 상징이다. 원래 옥은 돌
속에 간직되어 있다. 돌에 갇힌 옥, 그것은 번뇌에 가려진 불성의 비유
이다. 손오공은 돌을 깨고 나온 돌원숭이[本覺]로서 다시 한번 스스로를
깨뜨려 옥으로서의 본체를 완전히 드러내는 여정[始覺]을 걷게 된다. 그
출발점에 옥의 좌대 위에 앉아 몸소 불성을 증명하고 있는 선종의 조사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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