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P. 148
니시다 기타로를 생각할
때 나는 언제나 그의 친구
스즈키 다이세쓰(1870~1966)
를 떠올립니다. 두 사람은
1870년 가나자와에서 태어
나 제4고등학교에서 동문수
학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
려웠던 두 사람은 제4고를
중퇴하고 도쿄제국대학 선
과에 입학했습니다. 선과란
일종의 청강생과 같은 것으
로 본과생과 비교할 때 차별
사진 6. 어떤 삶이 최선의 삶인지를 생각하며 걷는 길.
대우를 받았기에 줄곧 큰 굴
욕감과 좌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 차별은 졸업 후에도 계속되었지만 결국 두 사람은 모두 세계
적인 학자가 되었습니다.
니시다 기타로가 남긴 말 가운데 특히 다음의 말은 우리나라에도 『탄이
초』를 뺀 채 널리 알려졌습니다.
“일본의 모든 것이 불타도 『임제록』과 『탄이초』만은 남았으면 좋겠다.” 5)
두 사람의 사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비슷한 데가 많습니
다. 스즈키 다이세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말은 시대마다 다르지만 행위적인 모순, 즉 비극은 영원히 상속된다.
5) 名和達宣, 「西田幾多郞と『敎行信証』」より」, 『니시다 기타로와 가르침의 증언』.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