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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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낚싯줄 아래로 드리우니
                  한 물결 살짝 흔들리자 만 물결이 뒤따르네
                  밤이 깊어 물은 찬데 고기는 물지 않으니

                  빈 배에 가득 달빛만 싣고 돌아오누나           10)



               덕성은 실제로 뱃사공 노릇을 하기도 했지만, 이 시는 어디까지나 마음
             의 정경을 노래한 것입니다. 한 물결이 살짝 흔들리자 만 물결이 뒤따른다

             는 일파만파一波萬波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생각이 끊임없음을 비유한 것입

             니다. 이 시에서 낚시는 상징적 은유로서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빈 배를 달
             빛 가득한 세계로 묘사한 마지막 구절은 무념無念이 곧 온전한 마음[全心]이
             라는 『금강경』의 깨달음을 눈부시게 표현했습니다. 시를 다 읽고 나면 알

             지 못할 깨달음의 경계에 읽는 사람의 마음에서 자아는 사라지고 담백하

             고 그윽한 풍경만 영화처럼 펼쳐집니다.
               이 시는 야보도천(12세기)이 『금강경야보송』에 인용함으로써 천하가 애송
             하는 게송이 되었습니다.

               내가 교토에 갔을 때는 3월 중순이라 벚꽃도 없고 단풍도 없지만 그야

             말로 터질 듯 부푸는 꽃봉오리의 계절입니다. 어느 시기, 어느 곳에 살더
             라도 사람들은 모두 꽃봉오리를 품고 살아갑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순수경험은 여전히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있다고

             느낍니다. 내가 니시다 기타로의 『선의 연구』를 다 읽어낸 것은 아마도 건

             성으로 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10) 『五燈會元』 卷五 : 千尺絲綸直下垂 一波才(纔)動萬波隨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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