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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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朗圓開淸과 낭공행적朗空行寂의 비문을 통해 범일의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다.



            출가와 입당 구법의 꿈



                                             ‘사굴산’이란  기사굴산으로  곧
                                           ‘영취산’을 말한다. 강릉시 구정면

                                           학산 2리에 위치한 굴산사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고, 범일의 것으로 추정
                                           되는 승탑과 석불좌상 등이 남아

                                           있다. 당시 굴산사의 규모가 얼마
          사진 1.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보물 제86호).    나 컸던지를 짐작하게 한다. 지금
              사진: 위키백과.
                                           은 빈터만 남아 있지만 전성기에
          는 사찰 당우의 반경이 300m에 이르렀고 승려 수도 2백여 명이었으며, 쌀

          씻은 뜨물이 동해까지 흘렀다고 전한다.

           『조당집』에 의하면 범일의 할아버지는 지금의 강릉 지방에 해당하는 명
          주의 도독을 지낸 김술원金述元이며, 어머니 역시 이 지방의 명문가인 문文
          (支)씨 후손이다. 범일은 강릉의 명문 호족 집안 출신으로 태양을 머리 위

          로 받드는 태몽을 꾸고 13개월 만에 낳았다고 한다. 15세에 출가하여 20세

          에 구족계를 받았으며, 이후 831년(흥덕왕 6) 2월에 흥덕왕의 왕자 김의종金
          義琮과 함께 당나라로 갔다.
           범일이 당나라로 구법을 떠났던 이 시기 승려들 사이에는 화엄 교학에

          서 당나라에 유행하고 있던 선사상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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