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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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굴산문의 개산과 교화
847년 8월에 경주에 돌아온 범일은 한동안 백달산에서 좌선을 하면서
머물고 있었다. 851년 명주 도독인 김순식이 굴산사에 와서 머물기를 간
청하여 범일은 드디어 굴산사에서 본격적으로 선법을 펼치기 시작한다. 궁
예가 태봉국을 건국할 때 큰 힘이 되었던 인물이 바로 김순식이다. 이러한
김순식이 범일을 굴산사로 모신 것은 범일의 가계가 강릉 지방에서 큰 영
향력을 미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사굴산문을 연 범일은 열반에 들 때까지 굴산사를 떠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였다. 경문왕·헌강왕이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국사로 모
시고자 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은 측천무후의 부름에
끝내 응하지 않았던 혜능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조당집』에는 한 제자
가 조사의 뜻을 묻자 범일은 “부처의 계단을 밟지 말고, 남을 따라 깨달으
려 하지 말라.”고 대답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범일의 선사상적
사진 3. 강릉 보현사 전경. 사진: 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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