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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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말이다.
범일의 법맥을 이은 대표적인 제자로는 개청開淸, 행적行寂 등 10대 제자
가 있었다. 이중 행적은 범일의 법맥을 이은 뒤 870년(경문왕 10)에 당나라
에 가서 석두계의 석상경저의 선법을 다시 이었으며, 885년(헌강왕 11)에 귀
국하여 이때부터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그로부터 신종信宗, 주해周解,
임업林儼, 양경讓景 등 500여 명의 제자가 배출되어 사굴산문의 선풍을 크
게 떨쳤다. 개청의 경우는 당초 『화엄경』을 공부하였으나 뒤에 범일에게서
선법을 전수 받아 강릉 보현산 지장선원地藏禪院에 머물면서 수백 명의 제
자들을 양성하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신경神境, 총정聰靜, 명연明然 등을
들 수 있다.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의 문제
천책天頙이 지은 『선문보장록』에는 무염의 ‘무설토론無舌土論’과 더불어
범일의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이 ‘선교대변문’에 실려 있다. 진귀조사가 설
산에 계시면서 총목방에서 석가를 기다리다가 조사심인을 전하여 조사선
이 전래되었다는 진귀조사설은 조사선의 기원을 밝히고 있는 내용으로 유
독 우리나라에서만 전해지고 있다. 『선문보장록』에는 진성여왕이 선과 교
의 뜻에 대하여 범일에게 묻자 이에 대하여 진귀조사설을 설하고서 이 같
은 조사선 사상이 무염이 설한 『능가경』이나 도윤이 공부한 『화엄경』보다
우수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천책은 이러한 내용의 출처를 『해동칠대록』에
두고 있는데 이 책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또 『삼국유사』에는 범일이 낙산사에 전각을 짓고 돌로 만든 정취보살상
을 봉안한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다. 최치원의 『지증대사비문』에는 “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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