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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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을 필요가 없다.” 또 “평상심이 곧 도이다.”라는 말은 마조선의 핵심 사
             상이니 범일이 염관을 통해 마조선의 정맥을 전수한 것이다.
               842년(회창 2) 염관이 열반에 들자 범일은 다시 석두의 수제자인 약산을

             찾아가게 된다. 약산을 만나 나눈 두 사람의 문답이 『조당집』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묻는다 :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원하는가?

                 답한다 : 강서성(염관제안 선사의 주석처)에서 화상을 뵙고자 왔습니다.

                 묻는다 : 여기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찾아왔는가?
                 답한다 :  화상께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시면 저는 뵙지도 못할 겁
                         니다.




               이에 약산은 “대단히 기특하구나! 기특하구나! 밖에서 들어온 맑은 바람
             이 사람을 얼게 만드는구나.”라며 감탄했다.
               조사선에서는 ‘깨달음’이라는 무일물無一物의 경지 자체에 매달려 안주

             하려는 또 하나의 ‘집착’을 낙공落空이라 하여 철저하게 물리친다. 궁극적

             인 깨달음은 열반에 안주하고자 하는 낙공을 벗어나 열반까지도 다 털어
             낸 절대공絶對空에 이르러야 한다. 범일은 이러한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
             를 유엄에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길도 없는데 어떻게 나를 찾아왔느냐는 약산의 물음은 ‘이심전심以心傳

             心’의 도를 물은 것으로, 범일의 선기를 테스트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
             이었다. 그러나 범일은 약산이란 존재마저 부정함으로써 약산의 의도를 보
             기 좋게 간파해 버렸던 것이다. 이어 범일은 법난의 와중에서도 6조 혜능

             의 탑을 예배하고서 귀국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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