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0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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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워 중생들의 아버지가 되고 임금의 스승이 될 만한 인물”로 범일을 언
급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들은 범일의 영향이 신라 땅에 얼마나 지대했는
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들이다.
사굴산문의 전승
고려시대에 들어 크게 활약한 산문은 가지
산문, 사굴산문, 희양산문의 세 산문이었다.
그중 사굴산문은 가장 두드러진 산문이다. 남
아 있는 기록을 통하여 보더라도 사굴산문 출
신의 승려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고승으로는 예종 때의 혜소慧炤를
들 수 있다. 그는 사굴산문 소속으로 송나라
에 가서 정인淨因의 법을 받아 귀국한 뒤 광명
사廣明寺와 순천의 정혜사定慧寺(현 송광사)에서
사진 4.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제자들 가운데 대감국
비. 사진: 서재영.
사大鑑國師 탄연坦然(1070~1159)과 지인之印은
이 문파를 크게 진흥시켰다. 탄연은 진주의 단속사斷俗寺에서 선풍을 크게
떨쳤고, 예종의 왕자였던 지인은 선법 외에도 교관敎觀과 시문詩文에도 능
통하였다고 한다.
특히 고려 중기에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정혜결사定慧結社 운동을 일으
켜 한국의 선을 크게 중흥시킨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도 사굴
산문 출신이다. 지눌 이후 송광사에서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惠諶(1178~1244)
을 비롯하여 16국사가 출현하여 고려 후기 불교계를 주도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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