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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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가서 운영을 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권유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조용한 도량에서 수행하며 머무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선뜻 마
             음을 내지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제 스님

             들의 의견도 분분했습니다. 가지 말라고 말리는 스님이 있는가 하면 가서

             새로운 불사에 도전해 보라고 권하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변 스님들의 의견까지 분분하니 더욱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결제 때마다 상기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원택스님의 권유

             도 있고 해서 이참에 한번 내려가서 지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비록 성철 큰스님께서 참회원에서 주무시거나 머무신 적은 없지만 당시 참
             회원은 백련암의 유일한 포교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곳에 가서 소임을
             맡아 잘 운영하는 것도 큰스님의 법을 펴는 데 있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1988년 동안거 결제일인 음력 10월 15일 마산 참회원으로 발
             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88서울올림픽이 막을 내린 직후였습니
             다. 함께 수행했던 도반 스님들은 동안거를 나기 위해 전국의 제방선원을

             찾아 다시 산으로 들어가는데 소납은 걸망 하나 달랑 짊어지고 도반들과

             는 반대로 따뜻한 바닷가 마산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와서 보니 그 당시 참회원은 잘 지어진 큰 2층 양옥집이었습니다. 2층
             큰방 두 개를 터서 법당으로 쓰고 있었고, 법당에는 큰스님이 그리신 큰 원

             상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집은 원불교 간판이 크게 붙은 원불교 교

             당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원불교 교당 이름이 참회원인 줄 잘못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언젠가 때가 되면 한
             눈에 척 봐도 절인 줄 알아볼 수 있는 법당을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

             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첫 만남의 순간 잠시 마음에 스치고 지나간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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