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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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등줄기에 땀이 후즐근하게 흘러내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종정예하께서 찾는다고 하여 가서 엎드리니 “이만하면 됐
          나? 니가 한번 봐라.” 하시며 메모지를 건네주셨습니다. 어제 원고와는 비

          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여전히 반은 한글 반은 한문 투의 문장이었습니

          다. 그래도 이 정도로 수정이 된다면 내친김에 다시 한번 간청을 올리지 않
          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보다 훨씬 낫습니다만 한문을 빼고 한글체로 완전히 바꾸어 주십

          시오!”

           “그놈 참 사람 힘들게 하네, 이놈아! 이렇게까지 고쳐쓰는 데 밤에 얼마
          나 힘들었는지 아나, 이놈아! 평생 써 온 한문을 버리고 한글로 글을 쓰려
          니 문장이 영 허전하다 말이다, 이놈아! 음……, 그래, 다시 생각해 보지.”

           종정예하께서는 고함을 치시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돌아서시

          는데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소납은 무수히 삼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세 번째로 받아든 법어는 <생명의 참모습>이라는 주제의
          법어였습니다. 상좌에게 졸려서 서툰 한글로 처음 쓰시는 한글 법어였습

          니다. 당신의 한문 문장에서 보이는 유려한 표현은 느껴지지 않아 아쉽긴

          했지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50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종정예하께
          서 당신의 고집을 버리고 한글로 부처님오신날 법어를 내리셨다는 의미
          만으로도 무궁무진한 공덕을 이루셨다는 생각에 저는 감지덕지할 뿐이

          었습니다.

           제6대 종정에 추대되신 다음 해인 1982년 새해를 맞이하여 내리신 신년법
          어도 당연히 한글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부처님오신날 법어가 바로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들이 애송愛誦하는 <자기를 바로 봅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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