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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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껍질(번뇌장)과 견해의 껍질(소
                                             지장)을 깨도록 하는 데 있다. 그
                                             러니까 눈을 뜨는 깨달음은 껍질

                                             을 깨는 깨침과 동시에 일어난

                                             다.  깨달음을  깨침이라고  표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 1. 동자스님의 마당 쓸기. 사진: 조계사.
                                               그러한 방법론의 공통분모가

          계율이다. 불교의 계율은 자아의 세계를 깨뜨리는 기능을 한다. 그것을 익

          히는 데 있어서 ‘몸 학습’은 필수가 된다. 자신의 수행터를 청정하게 유지
          하기 위해 물을 뿌려 청소하는 일, 스승의 부름에 응하고 묻는 말에 대답
          하는 일, 스승에게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 일상의 행위규범과 예의범절을

          몸으로 익히는 일 등이 그 일환이다. 그것이 자기를 버리고 스승을 따르는

          일에 속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초보 입문자에게 내려지는 사미계를 ‘스승
          의 가르침 가슴에 새기기[服膺]’, ‘스승 모시고 받들기[侍奉]’, ‘스승의 수건과
          물병 챙기기[巾甁]’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스승

          닮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작다고 무시할 수 없다. ‘몸 학습’이 바로 마음에 대한 눈뜸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육조스님은 방앗간에서 8개월간 방아를 찧다가 깨달
          았고, 향엄스님은 도량을 쓸다가 빗자루에 날린 돌맹이가 대나무에 부딪

          치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았다. 손오공의 ‘몸 학습’도 그랬다. 실천의 양

          이 쌓이면서 차원의 전이가 일어나 스승과 같아지는 날이 도래한 것이다.
          스승과 같은 차원으로 올라가는 이 일을 승당이라고 부른다. 전당에 올라
          간다는 뜻이다.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자.

           어느 날 손오공은 조사의 법문을 듣다가 기쁜 마음이 일어나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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