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2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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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이 적지 않습니다. 백척간두에서 어
                                     떻게 진일보할 수 있을까요? 천길 벼랑에
                                     서 나무를 잡은 손을 어떻게 놓을 수 있을

                                     까요?

                                       생로병사에 대한 심리적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백척간두에서 한 발자국을 내디딜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

                                     려야만 비로소 실존적 괴로움에서도 벗어
          사진 5. 보기만 해도 아찔한 백척간두.
                                     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아상我相이 사라져야 진정한 깨달음입니다. 아상이 사라지면
          ‘나’에 가려져 있던 시방세계는 저절로 드러납니다. 아상이 사라지면 깨

          달음에 대한 집착, 생로병사에 대한 집착도 다 사라집니다.

           시방세계가 바로 ‘전신全身’이라고 할 때 그 ‘전신’이란 개체 생명이 아니
          라 결코 단절되는 일이 없는 영원한 생명, 보편적 생명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독해는 나의 독해이지만, 사람마다 자신만의 독해가 있을 것입

          니다. 어떤 공안이든지 공안을 스스로 의심해 본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얻

          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명나라 말 만력(1573~1619) 시대의 학자 홍자성이 쓴 『채근담』에도 비슷
          한 구절이 있습니다.

           “피리 불고 노래하며 흥이 무르익은 곳에서 문득 스스로 옷자락을 떨치

          고 자리를 떠나는 것은 통달한 사람이 절벽 위에서 손을 놓고 거니는 것같
          이 부러운 일이다.”     2)




          2) 『菜根譚』, 103 : 笙歌正濃處,便自拂衣長往,羨達人撤手懸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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