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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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해인사 팔만대장경 판전. 사진: 해인사.


          부터 하사받은 대장경을 귀중하게 보관해 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나

          라에서는 잦은 전쟁이나 화재로 소실되기도 했고 재조대장경 목판이 있었

          으므로 초조대장경 판본을 굳이 보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
          이다.
           일본에는 재조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대학도서관이나 사찰들도 있다.

          이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전해진 것이다. 일본에서 재조대장경을 요청했던

          기록은 고려 말부터 보이는데,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1388년(창왕 즉위년)
          7월에 “일본의 국사國師인 승려 묘파妙葩와 간사이關西의 탐제探題 원료준源
          了俊이 사람을 보내와서 토산물을 바치고 우리나라에서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 250인을 돌려보내며 대장경을 요구하였다.”고 한 기록이 보인다. 또

          1392년(공양왕 4) 6월에 “일본에서 사신을 보내와 대장경을 요구하고 토산
          물을 바쳤다.”고 한 기록이 있다. 이때 고려 왕조에서 대장경을 하사했는
          지는 불분명하다.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일본의 대장경 요청은 계속되었다. 1394년(태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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