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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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및 교섭 실무를 담당하는 왜통사倭通事 윤인보와 그의 아우 윤
인시와 그의 집에 있는 왜노倭奴 3명을 의금부에 가두고 영의정 유
정현과 참찬 안순·병조판서 조말생·대사헌 하연·형조판서 권
진·동부대언 정흠지·우사간 박관을 보내어 합동으로 죄를 다스
리도록 하였다. 당초에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포로로 잡혀갔던 자
가 와서 말하기를, “대마도에 있을 때에 일본 국왕이 대마도주에게
통고하기를 ‘지금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대장경판을 구하려 한다.
만약 조선에서 허락하지 아니하면 침략하는 방법을 취할 것이니
너희들도 전함을 수리하여 따르라.’고 하였다.” 하였는데 이제 우
리나라 조정에서 경판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규주와 범령 등이
장차 일본에 편지를 보내려고 쓴 초안에 “지금 조선에 와서 힘써
대장경판을 청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였으니 병선 수천 척을 보내
어 약탈하여 돌아가는 것이 어떤가.”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일본
사신을 따라 온 일본 승려 가하加賀가 그 초안을 도적질하여 통사
이춘발에게 주었고, 이춘발이 이것을 임금께 계주啓奏하게 된 것
이다.(『세종실록』 6년, 1424년 1월 20일)
일본 사신이 조선으로부터 대장경판을 허락받지 못할 경우에는 일본
본토에서 군대를 보내 강제로 탈취해서 가져가기로 계획했다는 것이
다. 이 사건은 즉시 임금에게 보고되었고 국가의 중대한 문제로 처리
되었다. 그러나 일본과의 평화를 희망했던 조선으로서는 더 이상 문제
를 확대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일본 승려 가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고 결론짓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이 사
건에서 보듯이 당시 대장경판을 둘러싼 양국 간의 날카로운 신경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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