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4년 6월호 Vol.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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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인 포로와 맞바꾼 대장경




               그러면 왜 조선은 일본의 요청을 비교적 고분고분 들어주었던 것일까? 일
             본 국왕과 지방의 호족들이 대장경을 요청한 것만도 107회에 이르고 60회
             정도 대장경을 하사한 것으로 나온다. 조선 조정이 대장경을 주고서 그들에

             게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째, 왜구에게 잡혀간 조선인 포로의 쇄환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이달에 일본 순슈駿州 태수 원정源定이 사람을 보내어 말 2필을 바

                  치고 잡혀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하카다博多의 승천선사承天禪寺

                  주지 은공誾公이 사람을 보내어 예물을 바치고 『대장경』을 청구하
                  였고, 또 자운선원慈雲禪院 주지 천진天眞이 사람을 보내어 예물을

                  바치고 일본에 잡혀갔단 사람들을 돌려보냈다.(정종실록 2년, 1400년
                  8월 21일)



               일본에서 대장경을 요구할 때 조선인 포로를 데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더 많은 조선인을 쇄환해 오고 왜구를 근절하기 위해서 조선으로

             서는 일본의 요구를 모른 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양국 간의 평화를 위해서 그 정도의 요청은 들어줄 수 있다고 생
             각했던 것 같다.



                  일본 국왕에게 보낸 글에 이르기를, “금방 전하가 세상을 떠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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