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6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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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머물렀다. 『조당집』과 『전등록』에는 서
당의 법을 이은 이로 단 네 명의 이름만이
올라 있는데, 그 가운데 세 명이 신라인이
다. 마조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 서당과 백
장과 남전이 으뜸이고, 당시 만여 명이 서
당을 찾았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도의와 홍
척이 중국 선종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자
못 크다. 그럼에도 최치원은 홍척과 도의
사진 3.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908).
보다 오히려 당나라에 구법의 길을 떠나지
않았던 지증국사 도헌을 더 높게 받들었고, 심지어 살아생전 도헌을 보지
못한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나말여초 선사상에 다가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최치원의 『사산비명』
이다. 그중에서도 신라에 선종이 전래된 배경과 선사들의 면모를 개괄할
수 있는 글로는 단연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문」을 꼽을 수 있다. 이 비
문은 최치원이 885년(헌강왕 11)에 왕명을 받아 짓기 시작하여 무려 8년간
이나 고민을 거듭하다 893년(진성여왕 7)에야 완성한 것이다. 기간도 가장
많이 걸렸지만 그 이전에 지은 진감혜소의 비문이나 낭혜무염의 비문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주인공(지증도헌)의 선종사적 위상을 밝히고 있다. 이 비
문에 도의와 홍척이 등장하지만 도헌에는 미치지 못하는 선승으로 취급되
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필자는 눈을 뗄 수가 없다.
북산北山의 도의道義와 남악南嶽의 홍척洪陟이여! 따오기의 날개를
드리며 대붕새의 날개를 폄과 같다. 해외에서 왔을 때는 도를 누르
기 어려웠으나, 멀리 뻗은 선의 물줄기가 막힘이 없구나. 쑥이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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