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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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히 받들었다.
               긍양의 비문인 「정진대사 원오탑비문」은 965년(광종 16) 한림학사 이몽유
             가 지었다. 그는 986년(성종 5)에 최승로 등과 더불어 지공거가 되어 과거

             를 주관하였다.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시무 28조에는 광종이 지나치게

             불교의 신비함을 숭상하여 민폐를 끼쳤다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광종
             은 평소 긍양을 숭상한 나머지 “긍양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침
             식을 잊고 소리 내어 울었다.”라고 이몽유는 기록하고 있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기 한 해 전인 900년에 긍양은 스승 양부陽孚의

             곁을 떠나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난다. 그리고 수많은 고생 끝에 석상경
             저의 수제자인 곡산도연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인가를 받는다. 이에 대해
             긍양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긍양이) 곡산谷山으로 가서 도연道緣을 친견하였으니, 그는 석상경
                  저石霜慶諸의 수제자였다. 대사(긍양)가 묻되 “석상의 적적的的한 대
                  의大意는 어떠한 것입니까?” 화상(도연)이 대답하되 “대대로 일찍이

                  전승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대사가 그 말이 끝나자마

                  자 크게 깨달았으니, 묵묵히 현기玄機를 통달하고 비밀리 법통을
                  전해 받았다.   2)



               사굴산문 범일梵日의 법을 이은 행적行寂이 885년에 석상경저로부터 인가

             받고 귀국하여 활동하고 있었으니, 긍양은 석상의 명성을 들었을 수 있다.
             긍양이 도연에게 ‘석상의 적적한 대의’를 묻자, 도연은 ‘전승하지 않는 것’이


             2)  이몽유,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문」. “於谷山謁道緣和尙. 石霜之適嗣也. 乃問曰石霜宗旨的意如
               何. 和尙對云 代代不曾承. 大師言下大悟. 遂得黙達玄機密傳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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