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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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노라.”라고 최치원은 그의 위대성을 노래했다. 비록 북종선의 법맥을 멀
          리 이었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의 깨달음에 충실했던 도헌의 정신
          세계를 최치헌은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이 글을 완성하고 난 이듬해 최치원은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여조時務十餘

          條’를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벼슬을 버리고 산천을 떠돌았다. 어느
          비가 내리는 가을밤에 최치원은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쓸쓸한 가을바람 부는데 어디선가 애닲은 노래 들리네

              옛말에 지음지우知音之友라 하였거늘 그 소리 이해하는 자 드물구나.
              깊은 밤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는 예전 같은데
              등불 아래 마음은 만리 밖에 있네.




              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우리에게 잘 알려진 ‘추야우중秋夜雨中’이란 시이다. 지증국사의 비문을

          지을 때 최치원의 열정적이었던 모습과는 너무 대조를 이루고 있어서 마

          음을 애잔하게 한다.


            긍양의 희양산문 개창




           희양산문은 935년 개산조 긍양이 봉암사에 주석하기 시작하면서 폐허
          가 된 사찰을 중창하고 법계를 정비하여 구산선문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긍양은 고려 왕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태조 왕건은 물론 혜종

          과 정종으로부터 존경받았고, 특히 광종은 긍양을 스승으로 대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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