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24년 7월호 Vol.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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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3시에 기상하면 밤 9시에 취침할 때까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울력과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밤 9시에 삼경이 되어 자리에 누우면 10
분 안에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속가에 있을 때 공사판에서 막노동도 해보
고 병역의무를 마친다고 군대 훈련소에서 훈련도 받아 봤지만 해인사 행
자실 같이 불알에 요령소리가 나도록 일을 많이 한 것은 평생 처음이었습
니다.
소납이 행자생활을 할 때는 입산하러 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6
개월째 접어들 때까지 며칠에서 몇달 간 행자생활을 하다가 못 견디고 하
산下山하는 사람들을 세어보니 68명이나 되었습니다. 6개월째 고참행자로
서 행자반장이 되는데 해인사 주지와 합천군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행
자반장이 되면 행자들을 통솔하여 소임별로 지시만 하면 실제적인 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었습니다.
행자반장을 하면서 7개월째 접어들었을 때 백련암 출신인 원명스님이
선원을 다니다가 병역의무를 받아야 할 연령이 되어 해인사 큰절에 내려
와서 낮에는 회계 소임을 보고 밤으로는 이틀에 한 번씩 해인사 초소에 가
서 보초를 서는 방위병으로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소납을 불러서
찾아뵈니 “신 행자, 성철스님이 계시는 백련암에 올라가서 행자생활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백련암에는 올라가고 싶다고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인데 마침 군대 가는 스님이 있어서 자리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행
자반장이 되니 별로 내키지 않아서 답변을 하지 않고 3일째가 되니 원명스
님이 재차 물으셨습니다. 그때 큰절에 살면서 백련암에는 호랑이 스님이
계셔서 보통 사람들은 살기 힘들다는 소리를 익히 들었던 터라 선뜻 결정
을 못 내리고 있다가 원명스님의 거듭되는 권유에 미안해서 결국 백련암
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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