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0 - 고경 - 2024년 8월호 Vol.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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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846년 20세) 혜철대사가 밀인密印을 서당지장 선사로부터 전해
              받고 귀국하여 동리산(대안사)에서 개당 연설을 하니 법을 더 구하
              고자 하는 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스님(도선)도 그 선문에 옷

              을 공손히 추켜올리고 제자 되기를 청하였다. 대사(혜철)가 그의 총

              민함을 가상하게 여겨 지성으로써 제접하여 무릇 이른바 ‘말이 없
              는 말과 법이 없는 법[無說之說 無法之法]’을 허중虛中에서 주고받으니
              그 깨달음이 확실하게 되었다.         2)




           도선은 여선사와 더불어 혜철의 선법을 이어받았다. ‘무설지설 무법
          지법’이란 말은 남종선의 종지를 가리키는 말로써, 혜철의 비문을 쓴 최하
          가 서당지장에게서 혜철이 인가받는 장면을 묘사할 때도 등장하고 있다.

          즉 최유청은 이 말을 통하여 도선이 서당지장과 적인혜철로 이어지는 마

          조선의 계승자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혜철과 도선의 공통점은 모두 화엄에 밝았다는 점이다. 혜철은 15세의
          나이에 부석사로 출가하여 『화엄경』을 배웠는데, 그에 대한 이해력이 출중

          하여 ‘불교계의 안자顔子’로 불렸다.  도선 역시 15세에 월유산 화엄사에 출

          가하여 『화엄경』을 배웠는데, 귀신같이 그 내용을 이해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즉 젊은 나이에 화엄사상에 심취했다가 그 한계를 느끼고 선사상으
          로 전향했다는 점이 혜철과 도선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혜철이 ‘도

          선의 총민함을 가상하게 여겼다는 점’ 또한 화엄을 염두에 둔 말로 보인다.

           도선이 혜철의 문하에 있었던 기간은 846년부터 849년까지 고작 3년이



          2)  최유청 찬, 「백계산 옥룡사 증시선각국사 비명병서」.(이지관,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 3』, 423∼424쪽). “于
            時 惠徹大師 傳密印於西堂智藏禪師 開堂演說於桐裏山 求益者多歸之. 師迺摳衣禪門 請爲弟子.
            大師嘉其聰敏 接以至誠 凡所謂無說之說無法之法 虛中授受 廓爾超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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